크라이슬러를 인수한 메르세데스-벤츠의 놀라운 저력

1998년 5월 7일 독일이 자랑하는 자동차회사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는 미국 제3의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Chrysler)를 38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발표한다. 이것은 90년대 초 한때 BMW나 토요타와의 경쟁에서 고전하는 듯 하던 메르세데스가 이제 옛날의 영광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큰 사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오랫동안 메르세데스는 그야말로 오로지 성장  밖에 모르는 회사였다. 심지어 1973년 제1차 석유위기를 맞아 거의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이 회사의 매출은 늘기만 했다. 뛰어난 엔지니어링 능력으로 이름난 메르세데스는 고급자동차시장에서 아주 확고한 명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수요는 언제나 공급을 능가했다. 그래서 메르세데스의 경영자들은 우스개 소리로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우리는 메르세데스차를 팔지 않는다. 다만 맘에 드는 고객들에게 배급해 줄 뿐이다.”그러나 이러한 번영과 오만으로 말미암아 메르세데스에는 안이한 분위기가 만연되었으며, 그 결과 판매가 떨어지기 시작해도 그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미국의 메서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세계를 바꾼 기계(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란 책을 낸 것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들은 린생산방법(Lean Production Methods)이라는 일본의 생산기술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반면에 메르세데스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과 품질면에서 이 회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책이 나오자 메르세데스의 경영자들은 크게 당황하고 격분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 책을 1,000권이나 주문한 것을 보면 그들이 큰 자극을 받은 것은 틀림없었다. 또 하나는 토요타가 내놓은 렉서스(Lexus)의 성공이다. 토요타는 ‘독일의 품질을 적은 돈으로(German quality for less)'라는 문구로 렉서스를 광고하였으며, 이에 대한 미국소비자들의 반응은 대단히 좋았다. 그러나 렉서스의 값이 3만5천 달러였을 때 비슷한 메르세데스의 값이 5만 달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한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두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메르세데스는 드디어 헬무트 베르너(Helmut Werner)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1993년 4월 베르너는 “메르세데스차는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어졌기(overengineered)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었다”고 선언한다. 같은 해에 토요타의 렉서스는 북미에서 메르세데스보다 더 많이 팔리고, 경쟁사 BMW는 판매량면에서 메르세데스를 앞서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메르세데스는 다음의 세 가지 알을 해야 한다고 베르너는 확신한다.

– 원가를 절감한다.

–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제품구색을 늘린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즉 제품구색의 문제였다. 메르세데스의 텃밭인 고급자동차시장은 이제 경쟁사들로 붐비고 있다. 따라서 메르세데스는 이 시장에만 머무르면 안되고 소형차서부터 리무진까지 모든 등급의 승용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베르너의 생각이었다. 이후 메르세데스가 취한 주요조치는 다음과 같다.

– 92년에 10만3천6백 명이었던 승용차부문의 종업원수를 95년 말까지 80,550    명으로 줄였다. 남은 종업원들도 회사의 개혁활동에 참여하는 뜻에서 임금    의 인하를 감수했다. 이 밖에도 메르세데스는 원가를 내리고 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그 결과 슈투트가르트 근처에 있는 진델핑겐(Sindelfingen) 공장에서는 92년에 3만7천 명의 인원이 하루에 1,24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98년에는 3만 명이 하루에 1,800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원가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렉서스 등의 경쟁제품이 누리던 가격면에서의 경쟁우위를 많이 약화시킬 수 있었다.

– 품질의 향상을 꾀하기 위하여 현장종업원들에게 권한을 대폭 주었다         (employee empowerment). 예를 들어, 옛날에는 감독자(foreman)들이 노    동자들의 출근ㆍ휴식시간 등을 정했지만, 이제는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팀들이 자율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다. 권한과 함께 그들에게 책임도 더 많이 주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더 젊고 더 스포티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캠페인을 벌였다. 이러    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메르세데스는 1955년 이후 중단했던 포뮬러 완       (Formula One)경주대회를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95년에 다시 시작한다.

– 스포티한 모델을 비롯한 새로운 차종을 여러 개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    에서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메르세데스는 돈 많은 사람들만 타는 차’라는 경영자들의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던 메르세데스는 결국 전통보다는 실용주의를 택한다. 메르세데스의 신제품개발전략은 이러한 진통을 거쳐 나온 것이며 현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예를 들어, 1998년 여름 북미에서 잘 팔리고 있는 메르세데스차는 아래와 같은데, 이것들은 모두 새로운 모델 아니면 완전히 뜯어고친 차종들이다.

ㆍE-클라스 고급세단

ㆍM-클라스

  이것은 알라바마에서 생산하고 있는 스포티한 다용도차이며 97년에 처음 나왔다.

ㆍC-클라스

  93년에 나온 조금 작은 차이며, 메르세데스의 여러 차종 가운데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델이다.

ㆍS-클라스

  메르세데스의 최고급모델이며, 90년대 초 비평가들의 혹평을 들은 뒤 다시 설계된 바 있다.

이 밖에 메르세데스는 유럽에서 소형차 A-클라스를 팔고 있는데 이것은 메르세데스로는 아주 혁명적인 차다. 왜냐하면 값이 17,400 달러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차의 경쟁제품은 렉서스나 BMW가 아니라 포드의 피에스타(Fiesta)와 폴크스바겐의 골프(Golf)이다. 현재 이 차는 유럽에서 매우 잘 팔리고 있다.

러나 메르세데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다. 우선 효율이 일본회사들보다 아직도 약 20% 정도 낮으며, 주문이 밀려도 노동자들의 초과근무수당이 비싸기 때문에 토요일에 공장을 돌릴 수가 없다. 또 품질면에서 일본차보다 못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다이믈러-크라이슬러로 다시 태어난 이 회사가 메르세데스와 크라이슬러의 장점들을 잘 살려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다면 21세기에는 더욱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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